오레곤한인회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회장 인사말씀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2025년 새해부터 앞으로 2년간 제50대 오레곤한인회를 이끌고 갈 프란체스카 김 입니다.
을사년 새해를 맞이하여 여러분들의 가정과 일터에 기쁨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 4년간 눈부신 성장을 일구 워 놓으신 직전 회장단은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을 딛고 착실히 달려온 오레곤한인회를 더욱 굳건히 세워주셨습니다. 모든 선배님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한인회의 성장이 멈추지 않도록 새롭게 도약할 수 있게, 혼신의 힘을 다하여 뛸 것입니다!
저는 재임기간동안 오레곤한인회의 가치와 필요성에 좀 더 깊고 확실한 이해를 토대로 한인커뮤니티와 미 주류 사회 를 연결하여 한인들의 위상을 높여 나가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2세들의 민족 교육과 언어교육, 깊은 한국문화의 소중함, 고령화시대에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노인 복지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잘 살펴 나가겠습니다.
미주한인 사회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한인커뮤니티로 칭송받고 있는 오레곤 한인사회가, 동포여러분과 함께 끈임없는 변화를 통하여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오레곤한인회는 동포사회의 대표기관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저와 함께 손잡고 힘을 모아 헌신에 앞장선 새로운 임원진 모두가 희망찬 동포사회에 꿈을 키워 나갈수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프란체스카 김
I am Francesca Kim, and I am honored to serve as the president of the 50th Korean Society of Oregon for the next two years.
As we welcome the new year, I wish your homes and workplaces abundant joy and blessings.
Over the past four years, the previous executive team has achieved remarkable growth, further strengthening the Korean Society of Oregon, which has been thriving for more than half a century. I extend my deepest gratitude to my predecessors for their dedication, and I pledge to do my utmost to ensure the continued progress and success of our organization.
During my term, I aim to strengthen ties between the Korean community and mainstream American society through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Korean Society of Oregon’s value and significance. My goal is to elevate the status of Koreans and foster a stronger sense of unity. Additionally, I will focus on key priorities such as ethnic and language education for the second generation, preserving and promoting Korean cultural heritage, and addressing the welfare needs of our elderly in this aging society.
The Korean Society of Oregon will continue to serve as a representative organization for our community, striving to maintain its reputation as the most beautiful and exemplary Korean community within the Korean American diaspora. Through collaboration and ongoing change, we will build a brighter future together.
I kindly ask for your support and encouragement as we work together with a renewed spirit of dedication to nurture a hopeful and thriving Korean community.
Wishing you health and happiness!
Thank you,
Francesca Kim
임원소개
프란체스카 김
(Kim, Francesca) 회장
김헌수(Kim, Heon Soo)
이사장
김인자(Kim, Inja) 부회장,
서기, 청소년홍보대사 위원장
김성윤(Kim, SY) 부회장, 재무, 국경일 행사위원장
김주원(Kim, Joowon)
부이사장
오정방(Oh, Jung Bang)
고문, 이사, 홍보위원장
음호영(Eum, Tom Hoyoung) 고문
박현식(Park, Hyunsik)
사무총장, 이사, 총영사관 민원
업무신청접수위원장
지승희(Ji, Seung Hee) 이사, 문화센터 이사장, 문화예술분과위원장
이재찬(Lee, JC) 이사
김정현(Kim, Chris) 이사
이하연(Yi, Ha Yon) 이사
박창영(Park, Chang Young) 이사, 골프토너먼트
위원장
태희영(Tae, Heyoung) 이사
김송현(Kim, David S.)이사
정순택(Chong, Sun Taek) 이사
호선희(Ho, Sunny) 이사
김 운(Kim, Woon) 이사
우혜영(Woo, Hyeyoung)
이사
박선혜(Park, Sunhae) 이사, 청소년 드림팀 단장
이정수(Lee, Jung Soo) 이사
박경화(Park, Kyung H) 이사
김하운(Kim, Sharon) 이사
김유나(Kim, Yuna) 이사
황호석(Hwang, Hosuk)
이사
제니퍼 그로스
(Gross, Jennifer) 이사
에스더 권(Kwon, Esther)
이사
클라라 마이어
(Meyer, Clara) 이사
양재혁(yang, Jaehyuk)
감사/회계사
그렉 콜드웰(Greg Caldwell) 한미협력강화위원장,
전 한국명예영사)
김미선 (Sydney Taggart) 그랜트 신청추진위원장
각 분과위원회 명단(위원장)
*한미협력강화위원회(위원장 그렉 콜드웰, 전 한국명예영사)
*홍보위원회(위원장 오정방, 회보 및 홈페이지 관리)
*행사위원회(위원장 김성윤 부회장, 3.1절, 6.26, 8.15 국경일 행사 등 추진)
*골프 토너먼트 위원회(위원장 박창영, 서북미 오픈 골프대회)
*문화예술분과위원회(위원장 지승희)
*청소년홍보대사위원회(위원장 김인자)
*청소년 드림팀(단장 박선혜)
*그랜트 신청추진위원회(김미선)
*총영사관 민원업무 신청접수위원회(위원장 박현식 사무총장)
한인회 운영위원
조추자
패티린
김춘희
문화센터 강사진
지승희(이사장)
패티린 김춘희 조혁제 서정만 조정애 유숙자
문화센터 운영위원
태희영 에스더 권
역대 한인회장 명단
초대, 2대 박상호
3대, 4대 박해리
5대, 6대 이자승
7대, 8대 이은상
9대, 10대 신윤식
11대, 12대 박락순
13대, 14대 하만경
15대 최태홍
16대 박희진
17대 전홍국
18대 김병직
19대 최국주
20대 임용근
21대 곽성국
22대 이천영
23대 장남진
24대 임영희
25대, 26대 김민제
27대 박상철
28대, 29대 김승리
30대 백광기
31대 이준성
32대 음호영
33대 김영일
34대 홍선식
35대 정상규
36대 조병춘
37대, 38대 유형진
39대 김영민
40대 앤 김
41대, 42대 이명용
43대 라상희
44대 김성주
45대 이종화
46대 강대호
47대 오정방
48대, 49대 김헌수
50대 프란체스카 김
오레곤한인회 반세기 역사
“오레곤 한인들의 뿌리를 찾아서…”
– 한인 인구 4만명 – 한인교회 60개와 한인단체 30개 집계
– 한인 이민 첫 발걸음은 그레샴에서 시작!
– 오레곤한인회 반세기 역사 딛고 100년을 향한 새 도약…
– 한인회 예산 2023년에 100만 달러 시대 개막!
1967년 3월 1일에 창립된 오레곤한인회는 반세기 역사를 딛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웅비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비영리기관인 오레곤한인회는 한인사회의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면서 4만 여명의 한인들의 권익증진과 복지향상을 위해 힘을 쏟고 있으며 한인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와 이익 보호에 앞장 서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의 문화유산계승을 도모하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있다.4만여명의 오레곤 주 한인들은 대부분 포틀랜드와 비버튼 지역에 밀집 거주하고 있으며 한인사회에는 60여개의 한인교회와 30여개의 한인단체가 있다.
오레곤 한인 이민은 그레샴에서 첫 출발!
오레곤 한인 이민사의 발자취는 그레샴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포틀랜드시에서 20마일 동쪽에 위치한 그레샴 시는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땅에서 주로 채소농사를 짓고 사는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이곳에는 이민 후 한 평생을 농사를 짓다가 한많은 생애를 마감한 한인 1세들의 묘비가 즐비하게 새겨져 있다.
오레곤 최초의 한인은 윤병구 목사!
오레곤 최초의 한인은 윤병구 목사로 기록되어 있다. 인천 내리감리교회에서 이민 온 윤목사는 1903년에 설립된 하와이 한인연합감리교회 전도사로 시무했고 상항감리교회 목사로 시무하다가 사임한 후 오레곤 주로 건너와 채소농사를 짓고 살다가 두 자녀가 사망한 후 남은 가족과 함께 타주로 이주했다고 선교복음지 <태평양>(발행인 이보현 목사)지가 1980년 3월호에 보도했다. 윤 목사의 뒤를 이어서는 평북 용천출생의 김성옥씨 가족이 1911년 늦게 오레곤을 찾았고 김씨는 오레곤에서 일생을 마친 최초의 한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숭의 여학교를 졸업한 김채봉씨와 1917년 사진결혼하여 30년 동안 오레곤 주 주도인 셀렘에서 양파와 채소를 재배하며 살다가 1868년 7월 6일 타계했다. 부인 김채봉 장로는 남편 사후에도 계속 영농을 하면서 숭의여고와 연세대에 장학기금을 보냈고 1977년 2월 전 재산을 숭전대와 포틀랜드한인장로교회(김상증 목사 창립)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성옥, 김채봉 부부에 이어 1914년 박정수씨가 그레샴으로 건너왔고 그레샴을 한인들의 터전으로 가꾸는데 공헌했으며 5남 5녀를 두고 1954년 12월 12일 타계했다. 그레샴에서 한인 촌락이 본격적으로 향성된 것은 2차 대전을 전후해서 몬타나 주에서 몇 세대의 한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철도공사와 금광에서 일하던 여섯 세대가 그레샴에 정착했고 이들은 박명숙, 박용현, 한주선, 박병찬, 이윤경, 김은성씨의 가족과 독신이던 김승학, 최병섭씨이다.
농장 운영하며 이민 정착에 성공!
오레곤 한인 1세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생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밭에서 일생을 보내다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김명숙 할머니는 시집와서 부두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3일만에 워싱턴 주 야끼마에서 딸기를 따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농장 일을 시작했고 박말순 할머니도 농장에서 상추, 양파를 재배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현재 그레샴에는 오레곤한인회장(11대, 12대)을 역임한 박락순 여사가 유일하게 살고 있으며 이민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박여사는 서울대 출신으로 오레곤 주 초창기 한인유학생들을 돕고 후원해준 한인사회 원로이다.
오레곤한인회는 196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식을 마친 후 100여명의 동포들이 모인 가운데 창립되어 교민 친교활동의 효시를 이루었고 그 때부터 오늘까지 한인사회의 대표기관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동포들의 이민생활 길잡이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인회 예산 100만 달러 시대 개막!
오레곤한인회 예산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3만여 달러에 불과했으나 2021년 제 48대 부터 정부 그랜트 유치에 성공하여 30만 달러의 예산 운영으로 사업활동이 대폭 늘어났고 2023년에 한인회 예산 100만 달러 시대를 예고하면서 한인회가 정부의 에이전트가 되어 다양하고 폭넓은 사업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오레곤한인회에서는 코로나 19 백신접종 지원과 장학금지급, 아시안 혐오범죄 예방 및 대응방법 그리고 10여개 강좌의 문화센터운영과 노인건강 복지사업에 힘을 쏟고 있으며 매월 노인들에게 식사 또는 선물을 증정하면서 한인회관에서 즐거운 100세 인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레곤한인회는 웹사이트와 한인회 유튜브 방송을 포함해 분기별로 한인회보를 발간하여 동포사회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한인 커뮤니티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가고 있다.
교민들의 성금 12만불로 한인회관 구입!
오레곤한인회관은 1981년 동포사업가 신정두 사장의 도움으로 그가 운영하는 포틀랜드 다운타운 소재 카메라 월드 빌딩에 사무실을 무료로 제공 받아 최초로 오레곤한인회 간판을 내걸고 태극기와 함께 코리안의 문패를 달았다. 한인회는 1986년 신윤식, 최국주, 김승리 전직 회장들이 주축이 되어 한인회관 건립 모금운동에 나섰으며 교민들의 성금 12만불로 포틀랜드(8180 SW Leah Rd.)에 한인회관 건물을 구입해 한인사회 각종 모임과 행사장으로 사용하여 왔으며 10여년 후 김승리 회장이 앞장 선 가운데 2차 모금 활동을 통해 현재의 회관을 마련했고 한인회관 건물관리는 오레곤한국재단(OKF)이 맡고 있다. 오레곤한인회는 한인인구증가와 회고너건물가용 단체들이 늘어남에 따라 보다 편리한 위치와 시설확장 필요성을 절감하고 비버튼 중심지에 한인회관 이전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 오레곤한인회관 시세는 약 250만 달러로 평가되고 있다.
오레곤 최초의 한인교회는 포틀랜드한인교회!
오레곤 한인사회에는 약 60여개의 교회와 천주교, 안식교, 여호와의증인 그리고 2개의 사찰이 있다. 최초의 한인교회는 프틀랜드 다운타운에 있는 포틀랜드한인교회(현 포틀랜드영락교회)이다. 1964년 2월 4일 김관규 목사에 의해 창립된 한인교회는 미국인 30여명을 포함한 67명의 성도들이 모여 창립예배를 드림으로써 오레곤 주 최초의 한인교회가 되었다. 오레곤에서 두 번째의 한인교회는 1967년 7월 13일 김상증 목사에 의해 창립된 포틀랜드한인장로교회이다. 이 교회는 이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최대의 교세를 자랑할만큼 괄목할만한 성장과 눈부신 부흥을 거듭하면서 우뚝 솟아 올랐으나 김 목사의 은퇴와 더불어 내홍을 겪다가 교민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진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현재는 오레곤벧엘장로교회(담임 이돈하 목사)가 가장 큰 교세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한인교계의 정상에 올라 있고 에덴장로교회(담임 원정훈 목사), 포틀랜드영락교회(담임 박성하 목사), 온누리성결교회(담임 강재원 목사), 포트랜드중앙교회(담임 안형일 목사) 등이 오랜 역사와 함께 교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오레곤한인교계를 이끌어온 원로목사는 타계하신 김관규 목사(포틀랜드한인교회)김상증 목사(포틀랜드한인장로교회), 정덕환 목사(포트랜드중앙교회), 안병관 목사(비버튼한인장로교회), 이보현 목사(오레곤선교교회) 등이 동포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오레곤지역 한인단체 30여개, 권익보호와 친목도모!
오레곤한인사회에는 한인회를 비롯해 노인회, 상공회의소, 그로서리연합회, 세탁협회, ROTC동우회, 라이온스클럽, 민주평통자문회의, 오레곤한국전쟁재단, 오레곤한국재단, 오레곤문인협회, 오레곤사회관, 오레곤-밴쿠버한인교회연합회, 오레곤한인교회장로회, 오레곤장로찬양단, 체육회, 축구협회 등 30여개의 한인단체들이 회원들의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며 한인사회 성장에 동참하고 있다.오레곤한인회는 초창기에 창립초대회장인 박상호씨와 박락순 여사를 비롯해 하만경 박사, 이자승, 이은상, 신윤식, 박희진, 김병직, 전홍국, 최국주씨 등이 이끌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한인사회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임용근, 임영희, 곽성국, 이준성씨에 이어 유형진, 김영민, 이명용 씨 등이 한인사회 성장을 견인했고 강대호, 오정방 회장을 거쳐 현재 김헌수 회장이 48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
동포 업체 1,300개 업종별로 상권 장악!
그로서리, 세탁소, 식당, 델리 등 소규모 비지니스 운영 – 동포들이 운영하는 업체들을 보면 아직까지 대부분이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한 소규모의 비지니스에 불과하고 치열한 과다경쟁속에서 사활을 거는 피나는 노력을 쏟고 있다. 한인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의 그로서리를 운영하며 생활하고 있으나 코로나 19 여파로 다행히 호황을 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탁업계는 불황속에서 어여무을 겪고 있고 한국식당들은 10여개로 늘어나면서 한인 커뮤니티 활성화에 불을 지피고 있다.
오레곤 최초의 한국식품점은 대한마켓!
오레곤 주 최초의 한국식품점은 백일성 장로가 비버튼 힐스데일 하이웨이에 문을 연 대한마켓이며 윌라멧 강 건너 사우스 이스트 지역에서 신신상회(대표 신윤식)와 동양마켓(대표 이현주)이 한인사회 성장과 함께 차례로 문을 열었고 오레곤 주의회 5선의원 출신인 임용근 전의원이 초창기에 동양마켓을 운영했다. 현재는 4만여명의 한인들과 아시안들의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대형 슈퍼체인 H-마트와 G-마트 그리고 포틀랜드 부한마켓(대표 김성필)과 거북이식품 등이 상권을 놓 고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식당 효시는 “김치궁전”
오레곤지역 한국식당은 포틀랜드 사우스 이스트 지역에서 처음으로 권태미씨가 70년대 후반에 <김치궁전>을 열어 한국 불고기와 김치로 영업을 시작했고 1983년에 포틀랜드 다운타운 워싱턴 11가에서 박재호씨가 <옛집> 식당을 오픈해 밴드와 식사를 함께 제공하는 길목을 열어 놓았다. 이어서 이 훈씨가 사우스 이스트 파월에 <한국관>을 오픈하여 한식과 함께 생음악 연주가 있는 대형 무대를 선보이면서 교민들의 유일한 사랑방 역할을 했다.
1980년에 접어들면서 밀워키에서 생선집과 떡집을 운영하던 김희순씨(거북이식품 대표)가 깔끔하고 맛깔스런 가정식 백반으로 단골손님만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했고 1987년 고인이 된 박공택씨가 비버튼 시다힐스에 오픈한 <서울회관>이 한식전문 식당으로 면모를 갖추고 첫선을 보였다. 그 후 전원식당을 비롯해 김 광씨가 <코리아나>, <서라벌 회관>, <두레박>을 연달아 운영하면서 식당업계가 차츰 자리잡기 시작했고 외식인구도 늘어나면서 식도락가들로부터 음식맛에 대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고구월씨가 운영한 <뉴서울가든>이 문을 닫으면서 식당업계도 점차 한인들의 발길이 멈춰 섰으나 현재는 늘봄식당, 코리아나식당, 코리안 바베큐 고깃집, 강남바베큐, 해림, 소공동 순두부, 서울식당, 장충동식당, 낙원식당, 토지, 비원, 와바 포장마차, 원식당, 대장금 코리안 바베큐 등이 한식메뉴로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인 변호사 1호 이제선씨, CPA 공인회계사 이현찬씨!
한인 최초의 변호사는 이제선씨로서 1986년에 개업하여 한인들의 법률상담을 도왔으나 변호사 활동을 저고 사업가로 변신하여 시애틀에서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서북미 동포사회에서도 손꼽을만큼 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인회계사 CPA는 이현찬씨이며 1988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 코발리스한인장로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중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인의사는 레바논에서 첫 출발!
오레곤 한인의사는 이 모 닥터가 첫 발을 내디딘 것을 파악되고 있으며 레바논에 있는 이시효 내과 박정열 외과 김원규 산부인과가 그 뒤를 이었고 포틀랜드에서는 황기선 박사, 김동일, 김현옥 내과, 남극일 산부인과, 이보현 내과, 심형원 내과(셀렘), 박재옥 내과가 동포들의 건강 상담과 진료를 도와주고 있다.
보험업계 선두주자는 곽성국씨!
보험업계는 곽성국씨가 오레곤 주와 워싱턴 주에서 40여년 가깝게 오랜 경험과 전문 지식으로 한인들의 보험업무를 도와 줬으나 2013년에 타계했다. 한인 에이전트로는 조혜숙, 김석두, 김영민, 김영광, 하이디, 정성민, 강대호, 앤디 김씨 등이 영업하고 있다.
한인사회 최초의 언론기관은 현대신문과 FM코리아 방송!
한인 인구가 1만 5천여명쯤 되던 1984년 4월 오레곤 한인사회에 주간지인 현대신문(발행인 김헌수)이 창간되어 서북미 한인사상 최초의 동포신문으로 인기를 끌며 화제를 모았다. 현대신문은 창간호 특집 기획물로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살해했는가>”를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연재하면서 화제를 모았고 시애틀, 타코마, 밴쿠버, 유진 지역에 지사를 두고 4년 동안 동포사회 소식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또 한인사회 최초의 한국어방송인 FM코리아 방송(대표 김헌수)이 2000년 3월부터 시작하여 준비를 끝내고 2000년 12월 1일 개국해서 FM 90.7 MHZ를 통해 첫 방송을 시작하므로써 오레곤 이민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2년동안 동포사회의 새벽을 열면서 한인들의 유일한 벗으로 사랑받던 FM 코리아 방송은 KBS 방송국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열악한 방송환경탓에 12년만에 방송을 중단하여 동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오레곤주에는 현재 오레곤저널(대표 백미영)이 유일하게 현지에서 주간지로 발행되고 있으며 인터넷신문 시에틀N과 한국일보가 오레곤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의 선두주자는 신신부동산
오레곤 한인사회의 최초의 부동산 브로커는 신신부동산의 신윤식씨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 업계는 신윤식, 이은상, 이현주, 박영희, 김병직, 최민희, 장규혁, 지종성, 박평화, 김삼수, 김용호, 이형석, 제시카 허, 설 에이미, 지종성, 시드니 김(김미선), 김인자, 강대호, 백순향, 황성민, 유영재, 박화영, 이제인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오레곤 주 윌슨빌 시에 한국전쟁기념관 건립!
동포사회 힘모아 2001년 5월 4일 기공식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이하여 오레곤 주 윌슨빌 시 타운센터에 “한국전참전용사기념탑”이 세워졌다. 한국전쟁참전기념관건립 교민후원회(회장 곽성국)가 모금 운동에 나서 동포들의 뜨거운 마음과 정성을 모아 한미 혈연의 상징인 기념관을 건립하여 미 주류사회는 물론 참전용사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영을 받으면서 윌슨빌 시 관광센터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넋을 기린 이 뜻깊은 사업은 교민성금 135,800불 현대건설 10만불, 한국정부(김대중 대통령) 5만불 등 총 285,800불이 모금되어 한인들에 대한 미 주류사회의 관심과 시선을 끌었다. 오레곤 주 상원의원 출신인 임용근 의원이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지원한 전쟁기념탑에는 한국전쟁의 영웅인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실물사이즈로 건립되었으며 지금은 역사박물관 개관을 서두르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전쟁기념재단(Korean War Memorial Foundation of Oregon)은 임용근 의원과 곽성국 회장, 이준성 회장, 김병직 회장에 이어 2022년에는 오정방 전 한인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다. 이사회는 박진용 이사장의 뒤를 이어 Greg Caldwell 한국명예영사가 맡아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데 기념재단은 매년 6. 25와 7. 27 정전기념일 사이에 한국전참전 한인유공자들과 한국전참전 미국인들을 초청한 가운데 오레곤한인회와 합동으로 현장에서 범동포적으로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오레곤문인협회의 탄생!
– 2022년은 창립 20주년의 해
오레곤문인협회는 지역사회의 정서함양과 문화향상을 위하고 문학 동호인들의 작품활동을 정진시키며 국내외 문학단체들과 교류하면서 오레곤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하여 2002년 6월 25일에 문학동호인 6명 (강경식, 권태성, 신한식, 오정방, 주정은, 태희영)이 발기하여 비버튼에 소재한 차이나 제드 레스트랑에서 창립됐다.
전문 5장 19조, 부칙 2항의 회칙을 통과시키고 초대 회장에 오정방, 총무에 태희영, 감사에 권태성을 선출했다.
사업으로는 1. 매월 1회 정기모임, 2. 매월 뉴스레터 발간, 3. 매년 1회 연간집 발간 4. 시낭송회, 문학세미나 및 시화전 개최, 5. 문학강연 등을 열기로 했다.
문인협회는 처음에 <오레곤문학회>로 발족되었다가 창립 10주년이 되는 2012년 6월 정기총회에서 타주와의 격을 맞추기 위하여 회의 명칭을 <오레곤문인협회>로 변경했다.
그동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월 정기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뉴스레터는 2016년까지 발간됐으며 연간집은 2021년 현재 14호가 발행됐다. 아울러 시낭송회, 시화전 등이 개최되었고 미주한국문인협회 발행 <미주문학>에 오레곤문인협회 특집(통권 40호, 2007)이 게재되었으며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재외동포사 총서 <북미주 한인의 역사(하)>(2007)에도 오레곤문인협회 현황이 소개되었다.
2022년은 오레곤문인협회 창립 20주년의 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문학상 공모를 하고 있으며 새로운 문인들이 발굴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공모장르는 시, 시조, 수필, 단편 등 4개부문이다.
역대 회장은, 1~8대 오정방 시인(2002~2017), 9대 김홍준 수필가(2018~2019), 10~11대 김혜자 수필가(2020~2023)이고 현재 임원 및 회원은 다음과 같다.
임원:명예회장 오정방, 회장 김혜자, 부회장 신종철, 총무 김인자, 감사 이대로
회원(무순):임용근 임영희 신윤식 신영희 박보원 김홍준 김영순 박태수 서진숙 김주희
그리고 작고하였거나 타주로 이주하여 활동을 중단한 회원은 김선경(작고), 정용철(작고), 신한식(작고), 권태성, 강성재, 오영근, 신덕자, 김주원, 주정은, 강경식, 태희영, 임만빈, 미셸리, 김정아 등이다.
주류사회에 우뚝 선 성공한 한인들!
-로이 김 사장과 리처드 백 회장
오레곤 한인사회가 반세기 역사를 지나는 동안 이민자의 역경을 극복하고 각 분야에서 성공한 한인들이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로이 김 사장과 리처드 백 회장이다. 로이 김 사장은 중앙베다니개발기업(Central Bethany Development Co.)을 30여년 넘는 기간동안 오레곤 굴지의 토목건설회사로 성장시켜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으며 1991년 포틀랜드 노스웨스트 베다니 마을(Bethany Villarge)을 개발하여 140에이커 규모의 교외 마을에 온 가족을 위한 편리하고 다양한 상업용 쇼핑시설과 아파트, 사무실 건물 그리고 Bethany Athletic Club과 고령자 은퇴시설인 실버타운도 건립하여 지역 주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리처드 백 회장은 1995년 바이탈 엔트프라이즈의 전신인 컴퓨팅 소비자 전자제품 및 디지털 콘텐츠 보호무역협회에 중점을 둔 컨설팅회사 VTM 그룹을 설립하여 사업에 성공하였으며 10여개가 넘는 브랜드와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1,000여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는 백 회장의 VTM 그룹은 오레곤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해마다 이름을 올릴만큼 기업환경과 종업원 처우개선에 힘을 쏟고 있어 한국인 오너에 대한 영예와 존경을 받고 있는 대표적으로 성공한 한인사업가이다.